섣달 그믐날 밤 각 마을의 청년들이 나마하게로 분장하고「우는 아이는 없느냐~, 부모님 말을 안 듣는 아이는 없느냐~」, 「이 집 며느리는 일찍 일어나느냐~」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집집마다 돌아다닙니다.
오가 사람들에게 나마하게는 해마다 절기가 되면 찾아오는데 게으름을 경계하고, 무병무탈・풍작기원・산과 바다의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주는 내방신(来訪神)입니다.
나마하게를 맞이하는 집에서는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방법대로 요리와 술을 준비하여 정중하게 대접을 합니다.
오가시내의「나마하게 행사」는 옛날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행해졌는데 현재는 12월 31일(섣달 그믐날)에 행해지고 있습니다. 후계자 부족 등의 이유로 매년 행해지는 지역은 줄어들었지만, 최근 부활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1978년에「오가의 나마하게」라는 이름의 중요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겨울철에 이로리(일본식 난로) 옆에서 오랫동안 몸을 녹이고 있으면, 손발에 동그란 불 반점이 생깁니다. 이것을 방언으로 ‘나모미’라고 하는데, 게으름을 경계하기 위한 ‘나모미 하기(나모미 벗기기)’라는 말이 ‘나마하게’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모미 하기’는 신년을 맞이하는 축복의 의미도 있으며, 어린이나 새색시 등 가정의 새로운 구성원이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식칼 고헤이 |
‘나모미’를 벗겨내기 위한 ‘식칼’, 또는 지역에 따라서는, 신관이 신전에 올리는 길고 하얀 종이인 ‘고헤이’를 붙인 나무막대를 손에 들고 돌아다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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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 나무껍질, 나무조형물, 소쿠리에 종이를 붙인 것, 종이점토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도 있고, 각 지역의 조각가가 만든 탈도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게데 | 짚을 이용하여 비옷 모양으로 만든 의상. 탈과 함께 신으로 분장하는 상징적인 의상입니다. 게다시, 겐데, 게라미노 등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
하바키 | 짚으로 짠 발토시. 이것을 신고 있는 것은 먼 곳에서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짚신 | 먼 곳에서 눈길을 걸어 오기 위한 짚으로 만든 신발. |
한무제에게 복숭아를 바치는 그림/ 아카가미 신사 소장
중국 한나라 시대에 무제는 불로불사의 약초를 구하기 위해 5마리의 박쥐를 거느리고 오가 지역에 왔다. 5마리의 박쥐는 귀신으로 변신하여 무제를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어느 날 ‘하루만 휴가를 주십시오’라고 무제에게 부탁했다. 정월 대보름 하루만 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귀신들은 마을로 내려와 작물이나 가축, 마을의 처녀들에게도 손을 대며 날뛰었다.
곤경에 처한 마을 사람들은 무제에게 ‘해마다 처녀 한 명을 바치겠사오니, 그 대신에 귀신들을 시켜서 첫닭이 울기 전까지 하룻밤 동안에 해변에서 산꼭대기의 고샤도까지 천 단의 돌계단을 만들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만일 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시에는 귀신들이 두 번 다시 마을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마을 사람들은 하룻밤에 천 단은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귀신들은 척척 돌층계를 쌓아 올렸다.
당황한 마을 사람들은 귀신들이 999단까지 쌓아 올렸을 때 아마노자쿠(작은 요괴)를 시켜 ‘꼬끼오’라고 첫닭 울음소리 흉내를 내도록 했다.
놀란 귀신들은 화가 나서 옆에 서 있던 천년 묵은 삼나무를 쑥 뽑아서 땅에 거꾸로 쳐 박은 후 산으로 돌아가서 두 번 다시 마을로 내려오지 않았다.
아카가미 신사 고샤도 (국가지정 중요문화재)
고샤도로 이어지는 돌 계단
오가의 혼잔과 신잔은 옛부터 슈겐도(엄격한 수행을 행하는 산악신앙)의 신령한 땅이었습니다. 가끔씩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 수행자가 마을로 내려와 집집마다 돌면서 기도를 올렸는데, 수행자들의 그 섬뜩한 모습을 나마하게로 생각했다는 설입니다.
멀리 바다 위에서 오가 지역을 바라보면 일본해에 떠 있는 산처럼 보이는데, 그 산에는 마을사람들을 지켜주는 ‘산신’이 근엄하게 앉아 있다고 믿게 되었고, 그 산신의 사자가 나마하게라는 설입니다.
오가의 해안에 표류한 이국 사람들은 마을사람과 말도 다르고 모습도 달라 ‘귀신’으로 여겨졌습니다. 나마하게는 그 표류 이방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나마하게에 관한 기록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에도시대의 기행가 스가에 마스미(1754~1829)의 “오가노사무카제”입니다. 그는 1811년 정월 대보름에 방문한 오가 미야자와의 나마하게를 생살 벗겨내기(나모미하기)로 소개하며 상세한 해설과 그림을 남겼습니다. 그 외에도 나마하게는 민속학적 시점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야나기타 쿠니오(1875~1962)의 “작은설의 방문자”, 오리쿠치 시노부(1887~1953)의 “마레비토”, 그리고 오카모토 타로(1911~1996)의 “일본 재발견, 예술풍토기” 등에도 등장합니다. 오가의 민속학 연구자 요시다 사부로(1905~1979)는 1935년에 “오가 간푸잔 산기슭 농민 수기”에서 현지의 와키모토무라 오쿠라의 나마하게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 후, 미나미아키타군 전역에 걸쳐 나마하게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후 요시다 사부로의 저서는 나마하게에 관한 연구의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가노사무카제」
아키타 현립박물관 소장 사